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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장에서 사인만 받아가려다 덜컥 고용된 전과자와 전신마비 억만장자 작가. 솔직히 처음엔 이 조합이 그냥 웃기려고 만든 설정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제가 살면서 사람을 얼마나 조건으로만 판단했는지가 자꾸 걸렸습니다. 오늘은 영화 '디 업사이드'를 보고 든 생각을 두 가지 흐름으로 나눠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편견 없는 시선이 만든 케미
필립의 생활 보조원 면접 자리에는 완벽한 경력서를 들고 온 지원자들이 줄을 섰습니다. 그 틈에 델은 실업급여 서류에 사인만 받아 도망가려다 그 자리에 남겨집니다. 그런데 웃기게도 필립이 마음에 든 건 델이었습니다. 이걸 처음 봤을 때 저는 좀 억지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펙이 좋은 사람이 더 낫지 않겠냐는 쪽이었거든요.
그런데 영화를 계속 보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다른 지원자들은 필립을 "케어해야 할 장애인"으로 접근했고, 델은 그냥 눈앞에 있는 사람으로 대했습니다. 이걸 심리학에서는 비낙인화(de-stigmatization)라고 부르는데, 장애나 사회적 조건보다 개인 자체를 먼저 보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비낙인화란 상대방을 특정 범주로 분류하는 대신 한 개인으로 인식하는 방식으로, 관계의 질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처음 직장에서 저와 살아온 환경이 완전히 다른 동료를 만났을 때, 솔직히 가까워지기 어렵겠다는 판단을 먼저 했습니다. 그런데 몇 달을 함께 일하다 보니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진심과 장점들이 보이더군요. 델이 필립의 서재에 들어가 책을 슬쩍 들춰보고, 거창한 추상화 앞에서 "이게 뭔데 이 값?"이라고 반응하는 장면이 유독 생생하게 남는 건 그래서인 것 같습니다. 계산 없이 반응하는 사람이 오히려 진짜를 건드리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실제로 사회적 고립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미국 심리학회(APA)는 "사회적 연결의 질이 양보다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를 다수 발표한 바 있습니다(출처: 미국 심리학회(APA)). 필립에게 필요했던 건 완벽한 케어 매뉴얼이 아니라, 그냥 솔직하게 대해주는 사람 한 명이었던 거죠. 델이 그걸 충족시켰고, 그게 두 사람의 케미를 만든 출발점이었습니다.
- 완벽한 스펙보다 편견 없는 태도가 관계의 문을 먼저 연다
- 비낙인화(de-stigmatization)는 거창한 개념이 아니라 그냥 상대를 조건 없이 사람으로 보는 것
- 필립이 수십 명의 지원자 중 델을 택한 건 능력이 아니라 '반응의 진짜됨' 때문이었다
진짜 우정이란 결핍을 채우는 방식
이 영화를 두고 "장애인을 도와주는 착한 이야기"라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시각이 절반만 맞다고 생각합니다. 필립은 전신마비(tetraplegia) 상태입니다. 여기서 전신마비란 경추 부위 척수 손상으로 인해 팔다리를 포함한 몸통 전반의 운동 기능과 감각이 소실된 상태를 뜻합니다. 그런데 영화는 이 상태를 불쌍함의 도구로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필립에게 진짜로 결핍된 건 신체가 아니라 '삶을 다시 살고 싶다는 동기'였습니다.
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감방에서 나와 아내와 아들에게도 기대를 못 받는 상황입니다. 경제적 결핍(economic deprivation)이라는 개념이 여기 딱 맞는데, 이건 단순히 돈이 없다는 게 아니라 사회적 기회와 관계망에서 지속적으로 배제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필립의 집에서 훔쳐온 책을 아들 손에 쥐여주는 장면은 그 점에서 참 짠하게 느껴졌습니다. 뭔가를 줄 수 있는 아버지가 되고 싶었던 거잖아요.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오래 생각했던 장면은 델이 필립 대신 릴리에게 전화를 걸어버리는 부분이었습니다. 무려 1년 동안 파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도 전화 한 통 못 하는 필립을 참다 못한 거죠. 이건 배려라기보다 거의 개입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진짜 우정처럼 느껴졌습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게 아니라 불편해도 끼어드는 것, 그게 델 방식의 우정이었으니까요.
세계보건기구(WHO)는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가 만성질환자의 삶의 질과 정신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습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WHO)). 여기서 사회적 지지란 정서적·도구적으로 타인이 곁에 있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필립에게 매기나 이본이 해줄 수 없었던 게 바로 이 정서적 지지였고, 델이 그 자리를 채운 겁니다. 다만 솔직히 말하면, 두 사람의 갈등과 이후 화해가 좀 빠르게 지나간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습니다. 감정선이 충분히 쌓이기 전에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게 아쉬웠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델이 필립에게 하늘을 선물하는 마지막 장면은, 제 경험상 이건 좀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냥 울컥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디 업사이드, 원작인 언터처블이랑 많이 다른가요?
A. 큰 줄기는 같습니다. 전신마비 자산가와 전과자 출신 보조원이 우정을 쌓는다는 설정, 패러글라이딩으로 이어지는 감동 등은 그대로입니다. 다만 디 업사이드는 할리우드 감성에 맞게 유머의 밀도를 높이고 델의 가족 서사를 더 구체적으로 풀어냈다는 점이 다릅니다. 원작이 좀 더 담백하다면, 리메이크는 좀 더 유쾌하게 밀어붙이는 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Q. 브라이언 크랜스톤이 실제로 휠체어를 탄 건가요?
A. 아닙니다. 브라이언 크랜스톤은 비장애인 배우로, 전신마비 역할을 연기하기 위해 별도의 신체 훈련과 자료 조사를 거쳤습니다. 이 캐스팅 자체가 장애인 배우 기회를 박탈한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는 반면, 연기력으로 충분히 설득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도 공존합니다.
Q.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고 하던데 맞나요?
A. 맞습니다. 프랑스의 억만장자 필립 포조 디 보르고와 알제리 출신 보조원 압델 셀루의 실화를 기반으로 합니다. 원작 언터처블이 이 실화를 먼저 영화화했고, 디 업사이드는 그 리메이크입니다. 실제 두 사람도 영화처럼 깊은 우정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Q. 아이들이랑 같이 봐도 될까요?
A. 전체적으로 가족 영화에 가깝지만 성인 유머와 약물 관련 장면이 일부 포함되어 있어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와 함께 보기엔 다소 걸릴 수 있습니다. 중학생 이상이라면 오히려 대화 소재로 삼기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디 업사이드를 다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앉아 있었던 건, 영화가 끝난 뒤 필립을 해고했던 그 장면 때문이었습니다. 릴리가 휠체어의 필립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낀 순간, 필립은 모든 게 잘못됐다며 델을 내보냅니다. 근데 그 분노가 사실 델을 향한 게 아닌 것도 느껴졌거든요. 상처는 보통 엉뚱한 데로 튑니다.
정리하면, 이 영화가 말하는 건 결국 하나입니다. 상대를 어떤 범주로 규정하지 않고 그냥 한 사람으로 대할 때, 관계가 시작된다는 것. 화려한 경력도, 완벽한 배려도 그 시작을 대신하진 못합니다. '언터처블' 원작을 본 분이라면 비교하며 봐도 좋고,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어느 쪽 먼저 봐도 각자의 매력이 있습니다. 저는 디 업사이드를 먼저 봤는데, 이후 원작을 찾아보게 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