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솔직히 저는 처음 멜리스를 틀었을 때 그냥 흔한 부유층 가족 스릴러겠거니 하고 크게 기대를 안 했습니다. 가정교사가 가족 안으로 들어온다는 설정 자체는 익숙하니까요. 그런데 애덤이 얼마나 정교하게 가족을 해체해 나가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 리모컨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더라고요. 복수를 준비한 한 사람이 평범한 가족의 일상 안으로 침투해 조금씩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이야기, 멜리스 줄거리를 정리했습니다.

침투 — 가정교사라는 완벽한 위장
제가 멜리스를 보면서 가장 먼저 소름이 돋은 장면은 애덤이 처음 그리스 별장에 등장했을 때입니다. 그는 내새(Nat)의 가정교사 조디를 통해 자연스럽게 제이미 가족의 휴가에 끼어들었는데, 어쩌면 이 자체가 이미 치밀한 계획의 첫 단계였던 거죠.
애덤의 침투 전략을 보면 이른바 소셜 엔지니어링(Social Engineering)의 교과서처럼 느껴집니다. 소셜 엔지니어링이란 기술적인 해킹이 아니라 사람 간의 신뢰 관계를 이용해 원하는 정보나 접근권을 얻어내는 방식을 말합니다. 애덤은 처음부터 기술이나 힘을 쓰지 않습니다. 그저 덱스터와 친해지고, 제이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수영장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뿐이었죠.
특히 덱스터가 바위에 머리를 부딪혔을 때 "엄마한테는 말하지 말자, 내일 제트스키 못 탈 수 있으니까"라며 아이와 작은 비밀을 공유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 순간 애덤은 단순한 교사가 아니라 '우리 편'이 되는 거니까요. 제이미 역시 이때부터 애덤을 눈여겨보기 시작합니다.
그 다음 수순은 기존 가정교사 조디를 밀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조디의 음식에 몰래 손을 써 컨디션을 망가뜨리고, 자신이 조디를 병원까지 데리러 가서는 제이미 가족에게 조디가 그만두겠다는 뜻을 전합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도 이 장면에서 애덤이 조디를 설득한 건지 압박한 건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서 더 섬뜩했습니다. 어느 순간 조디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애덤이 앉아 있었습니다.
조작 — 제이미를 무너뜨리는 시나리오
애덤이 가족 안에 완전히 자리를 잡은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제이미를 무너뜨리는 단계가 시작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심리 스릴러에서 주인공이 한 번에 큰 사건을 터뜨리는 식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은데, 멜리스는 달랐습니다. 애덤은 아주 작은 것들을 하나씩 쌓아 올리는 방식을 씁니다.
그리스에서 술자리 이후 제이미의 셔츠에 고양이 피를 묻혀 놓고, 귀국 후에는 제이미의 회사 이메일 계정을 해킹(Hacking)해 여직원에게 성적 메시지를 발송합니다. 해킹이란 승인되지 않은 방법으로 타인의 시스템이나 계정에 무단 접근하는 행위를 가리키는데, 애덤은 회사 동이서 안에 악성코드를 심어 제이미의 계정을 원격으로 장악했습니다. 제이미 입장에서는 자신이 한 일이 아닌데 증거는 자신에게 향하는, 해명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 놓인 거죠.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애덤은 언론사에 제보까지 합니다. 성희롱 의혹이 기사화될 것이라는 연락을 받은 제이미는 20년 가까이 쌓아 올린 회사가 한순간에 흔들리는 상황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집까지 털리게 만들어 가족이 기댈 공간 자체를 없애버립니다.
이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는 심리 조작 기법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가스라이팅이란 상대방이 스스로의 판단이나 현실 인식을 의심하게 만들어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제이미는 매 사건마다 "내가 한 게 아닌데"라고 말하지만 주변 어느 누구도 그를 완전히 믿어주지 않습니다. 부인 넷과의 관계까지 금이 가기 시작하는 건 그 결과였습니다.
- 그리스 귀국 직후: 피 묻은 셔츠 조작으로 제이미를 범죄 용의선상에 올림
- 회사 이메일 해킹: 성희롱 메시지 발송으로 직장 기반을 흔듦
- 언론 제보: 의혹을 외부로 확산시켜 사회적 신뢰까지 무너뜨림
- 강도 사주: 제이미 가족이 기댈 집과 물리적 공간까지 제거
복수의 정당성 — 애덤은 정말 피해자인가
멜리스를 다 보고 나서 제가 한참 생각했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애덤은 자신이 모든 것을 잃은 건 제이미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아버지 틸더먼의 사업이 무너진 것, 부모가 화재로 사망한 것, 그 이후 자신이 겪어야 했던 모든 불행의 근원이 제이미라는 거죠.
그런데 드라마 안에서 제이미가 틸더먼 사업을 고의로 망하게 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습니다. 벤처캐피털(Venture Capital) 투자란 본질적으로 고위험 고수익 구조를 전제로 하는데, 쉽게 말해 성공 가능성과 실패 가능성을 동시에 안고 시작하는 투자 방식입니다. 제이미가 틸더먼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봤다는 사실 자체는 범죄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애덤은 이를 '살인'과 같은 행위로 받아들였고, 오랜 시간 그 분노를 복수의 연료로 삼아온 거죠.
저는 이 부분이 멜리스의 가장 날카로운 지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애덤이 복수를 실행하면 할수록 그 피해는 제이미 한 사람이 아니라 아무 관련 없는 조디, 데이미언, 심지어 아이들에게까지 번집니다. 데이미언은 단지 애덤의 정체를 눈치챘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잃습니다.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하려는 과정에서 애덤 스스로가 훨씬 더 많은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죠.
영국 범죄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장기 복수형 범죄(Long-term Revenge Crime)의 경우 가해자 스스로가 피해의식을 내러티브화하는 과정에서 실제 사실과 인식 사이의 괴리가 점점 커지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영국심리학회(BPS)). 멜리스의 애덤은 그 전형적인 사례처럼 보였습니다.
몰입의 이유 — 이 드라마가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는 방식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애덤의 계획이 너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장면이 반복되다 보니 "현실에서 이게 가능한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특히 해킹과 강도 사주가 거의 동시에 진행되면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는 설정은 다소 무리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멜리스가 끝까지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은 다른 데 있다고 봅니다. 바로 애덤의 심리적 리얼리티(Psychological Reality)입니다. 심리적 리얼리티란 사건의 물리적 가능성과 별개로 캐릭터의 감정과 동기가 얼마나 설득력 있게 느껴지느냐를 의미합니다. 애덤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그 내면의 논리가 꽤 촘촘하게 쌓여 있어서 저는 애덤의 행동에 어느 순간 이해의 여지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게 오히려 더 불편했고요.
제 경우에는 줄스 부부가 애덤을 의심하기 시작하는 중반부부터 집중도가 확 올라갔습니다. 데이미언이 조각조각 단서를 모아가는 장면과, 애덤이 그보다 한 발 앞서 움직이는 장면이 교차되는 편집이 특히 긴장감을 잘 만들어냈습니다. 심리 스릴러 장르의 서사 구조를 분석한 영화학 연구에서도 '인지 격차(Information Gap)', 즉 시청자와 등장인물 사이의 정보 불균형이 몰입감의 핵심 요소로 꼽힌 바 있습니다(출처: 영국영화협회(BFI)). 멜리스는 이 격차를 마지막까지 영리하게 유지합니다.
결말에서 아이들이 멀쩡히 놀고 있는 장면을 본 제이미의 안도감,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애덤의 공허한 표정은 이 드라마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실체 없는 분노가 만들어낸 긴 여정이 결국 어디로도 가지 못했다는 인상이 남았거든요.
자주 묻는 질문
Q. 멜리스 결말에서 애덤은 어떻게 되나요?
A. 드라마 마지막에서 제이미와 맞닥뜨린 애덤은 아버지의 복수를 말하지만, 아이들이 무사하다는 것이 확인됩니다. 그 직후 땅 문제로 제이미와 갈등이 있었던 드미트리의 아들이 등장해 제이미를 해치려 하고, 애덤은 그 자리에서 결국 죽음을 맞이합니다. 복수를 완성하기 직전 실체 없는 분노의 끝을 맞이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Q. 멜리스에서 애덤이 복수하려 한 이유가 뭔가요?
A. 애덤의 아버지 틸더먼은 벤처 사업가였는데, 제이미가 투자를 철회하면서 회사가 파산했습니다. 이후 부모가 화재로 사망하는 사건이 이어졌고, 애덤은 이 모든 불행의 원인이 제이미에게 있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드라마는 이 인과관계가 애덤의 주관적 해석인지 실제인지를 끝까지 명확히 밝히지 않아 복수의 정당성 자체를 질문하게 만듭니다.
Q. 멜리스는 몇 부작이고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멜리스(Malice)는 영국 드라마로 총 6부작 구성입니다. 국내에서는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으며, 플랫폼별 서비스 여부는 변동이 있을 수 있으므로 각 플랫폼에서 직접 검색해보시는 것이 정확합니다.
Q. 줄스 남편 데이미언은 왜 죽게 되나요?
A. 데이미언은 애덤의 과거 신문 기사와 신원 불일치를 발견하고 조사를 시작합니다. 소피를 직접 찾아가 애덤의 거짓 해명이 사실이 아님을 확인하기 직전, 애덤이 먼저 데이미언의 집을 찾아가 그를 쓰러뜨립니다.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가장 빠르게 움직여 증인을 제거한 것입니다.
결론
멜리스는 단순히 "나쁜 가정교사가 가족을 위협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가 다 보고 나서 오래 남은 질문은 "애덤이 틀렸는가"가 아니라 "분노가 진짜라도 복수는 정당한가"였습니다. 드라마는 그 답을 직접 내려주지 않고, 애덤의 실체 없는 복수가 무고한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삼켰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심리 스릴러에서 이런 도덕적 모호함을 끝까지 유지하는 작품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계획이 지나치게 완벽하다는 아쉬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덤이라는 인물의 내면 논리가 꽤 설득력 있게 구성돼 있어서 저는 충분히 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장르를 좋아하신다면 한 번 보시고 마지막 장면에서 어떤 감정이 남는지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