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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도 없이 학생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장면, 저는 그 장면에서 멈췄습니다. 영화 <18, 청춘>은 학교라는 공간이 얼마나 쉽게 한 아이를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그리고 반대로 단 한 사람의 믿음이 그 아이를 어떻게 붙잡아 줄 수 있는지를 꽤 정직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전소민, 김도현 주연의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학창 시절 기억이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습니다.

 

마음일기, 감정 리터러시를 가르치는 선생님

희주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것은 일기장입니다. 그냥 일기가 아니라 "마음 일기"입니다. 하루 동안 자신 안에서 어떤 감정이 일어나고 사라졌는지를 관찰해서 쓰는 것인데, 처음엔 저도 "이게 무슨 소용이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생들 반응도 비슷했죠. 수행평가 점수도 없는 걸 왜 쓰냐고 묻습니다.

여기서 희주가 제안하는 개념이 바로 감정 리터러시(Emotional Literacy)입니다. 감정 리터러시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름 붙이고, 표현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지금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왜 슬픈지"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힘입니다. 심리학자 피터 살로베이와 존 메이어가 1990년대 정의한 정서 지능(EQ) 개념과 맞닿아 있는데, 이 능력이 낮을수록 감정이 행동으로 폭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순정이 창문을 깨는 행동도 그 맥락에서 봐야 합니다. 엄마에 대한 분노, 아무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답답함, 이 감정들이 언어로 나오지 못하고 행동으로 터진 겁니다. 제가 학창 시절을 돌아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엔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냐"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희주는 욕을 써도 된다고, 사진을 찍어도 된다고 말합니다. 형식보다 솔직함을 먼저 요구한 겁니다. 이 장면이 영화에서 제일 현실적으로 느껴진 이유는, 그게 실제로 통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 감정 리터러시: 자신의 감정을 인식·명명·표현하는 능력
  • 정서 지능(EQ)이 낮을수록 감정이 충동적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음
  • 마음일기는 감정을 언어화하는 훈련의 도구로 기능
  • 수행평가 없이도 학생들이 참여하도록 유도한 희주의 설계가 핵심
요약: 희주의 마음일기는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라 감정 리터러시를 기르는 실질적인 도구였고, 순정의 폭발적 행동은 그 훈련이 부재했던 결과였습니다.

 

학생인권, 증거 없는 의심이 만드는 상처

학생주임 선생님이 순정을 부르는 장면은 불편했습니다. 근거는 단 하나, "왼손잡이라는 사실을 먼저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순정이 반박합니다. 걸릴 걸 알면서 왼손잡이라고 먼저 말할 사람이 누가 있냐고요. 논리적으로 맞는 말인데, 그 논리가 통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학교에서 종종 반복되는 구조입니다. 증거보다 인상, 기록보다 직감으로 특정 학생이 먼저 호출됩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학생의 인권 침해 사례 중 교사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징계가 반복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출처: 국가인권위원회). 영화에서 희주가 인권조례 제3조, 제5조, 제6조를 줄줄 읊는 장면은 다소 교과서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저는 그 장면에서 오히려 현실의 무력감이 느껴졌습니다. 조례를 외워도 막히지 않는 구조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적법 절차(Due Process)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어떤 처벌이나 불이익을 주기 전에 반드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당사자에게 소명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쉽게 말해, 먼저 왜 그랬는지 물어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겁니다. 학교 현장에서 이 원칙이 얼마나 지켜지는지는 솔직히 회의적입니다. 제 경험상 "이유가 뭐냐"보다 "네가 했냐 안 했냐"가 먼저인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반면 희주는 조례 시간에 창문 사건을 목격했거나 관련된 학생이 있으면 손을 들라고 하면서, 동시에 "이 반에서는 없던 일로 한다"고 말합니다. 처벌을 전제로 한 질문이 아니라 신뢰를 전제로 한 질문이었습니다. 물론 이 방식이 모든 상황에서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관계 확인과 책임을 묻는 절차가 완전히 생략되면 그것도 또 다른 문제가 됩니다. 하지만 적어도 시작이 "의심"이 아닌 "믿음"이었다는 것은 다릅니다.

요약: 증거 없는 의심과 적법 절차 부재는 학생에게 이중의 상처를 주며, 희주의 방식은 완벽하진 않지만 신뢰를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믿음의 교육, 한 사람이 버티게 만드는 힘

영화를 보면서 가장 오래 생각한 장면은 희주가 순정에게 하는 말입니다. "네가 아니잖아." 짧은 문장인데, 그 무게가 꽤 컸습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단 한 사람이 그 말을 해주는 것, 그게 얼마나 큰 일인지를 저는 개인적으로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고 부릅니다. 교사가 학생에게 긍정적인 기대를 가지고 대할 때 학생의 실제 성취나 행동이 향상된다는 이론입니다. 1968년 로버트 로젠탈과 레노어 제이콥슨의 연구로 알려진 개념인데, 쉽게 말해 "믿으면 달라진다"는 겁니다. 물론 믿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순정의 가정 환경, 경제적 어려움, 엄마와의 관계 같은 구조적 문제들은 희주 혼자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영화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희주가 순정을 "고쳐야 할 문제 학생"으로 보지 않고 "이유가 있는 사람"으로 대하기 때문입니다. 창문을 깬 이유를 궁금해하는 것, 야간자율학습을 빠지는 것을 바로 혼내지 않는 것, 체육대회 우승이라는 조건을 걸어 순정에게 동기를 찾아주는 것. 이 모든 접근이 진단보다 이해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바로는, 선생님에게 "왜 그랬어?"라는 질문을 먼저 받은 순간과 "너 또 이러면 어떻게 할 거야?"라는 말을 먼저 들은 순간의 차이가 꽤 컸습니다. 전자는 대화가 시작되고, 후자는 그냥 닫히는 느낌이었습니다. 좋은 교육이란 결국 그 시작의 방향을 어디로 두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요약: 피그말리온 효과처럼 믿음에서 출발한 교육적 접근은 학생의 행동을 바꾸는 실질적인 힘이 될 수 있으며, 희주의 방식은 그 원칙을 현장에서 실천한 사례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18 청춘은 어떤 내용인가요?

A. 전소민, 김도현 주연의 청춘 드라마 영화로, 새로 부임한 담임 선생님 희주와 가정환경으로 상처받은 학생 순정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성적이나 규율보다 학생의 감정과 이유를 먼저 들여다보려는 희주의 교육 방식이 핵심 주제입니다. 학교 창문을 깨뜨린 사건을 계기로 순정이 용의자로 몰리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시험대에 오릅니다.

 

Q. 마음일기가 실제로 효과가 있나요?

A.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훈련은 감정 리터러시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심리학회(APA)의 자료에 따르면 정서 인식 능력이 높을수록 충동적 행동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만 마음일기 자체보다는 그것을 어떤 분위기에서 쓰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평가받는다는 느낌이 들면 솔직한 감정을 적기 어렵기 때문에, 희주처럼 채점 없이 자유롭게 쓰도록 하는 환경 설계가 핵심입니다.

 

Q. 희주 선생님처럼 학생 핸드폰을 안 걷는 게 맞는 방식인가요?

A. 이 부분은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희주의 방식은 학생에게 자율과 책임을 동시에 맡기는 방식인데, 실제로 자기조절 능력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학생에게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점도 사실입니다. 단순히 "걷지 않는다"가 핵심이 아니라, 그 전후로 학생과 어떤 신뢰 관계를 형성했느냐가 더 중요한 변수라고 생각합니다.

 

Q. 영화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언급되는데, 실제로 어떤 내용인가요?

A.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일부 시·도 교육청에서 제정한 조례입니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사생활 보호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희주가 인용하는 조항들은 실제 조례 내용을 바탕으로 하며, 학생이 증거 없이 의심받거나 언어적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이 조례가 보호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결론

영화 <18, 청춘>은 "좋은 선생님이란 어떤 사람인가"를 직접 묻는 대신, 희주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줍니다. 저는 이 영화가 주장하는 것에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믿음과 이해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구조적 공백이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순정의 문제는 희주 한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있었고, 영화도 그걸 완전히 해결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남긴 것은 분명합니다. 감정 리터러시를 키우는 교육, 적법 절차를 무시하지 않는 학생인권 감수성, 그리고 행동의 이유를 먼저 물어보는 태도. 이 세 가지는 지금 학교 현장에서 여전히 충분하지 않습니다. 도파민이 넘치는 콘텐츠들 사이에서 이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서 마음이 꽤 오래 조용해졌습니다. 그게 이 작품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F7AtAetZW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