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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가 모든 걸 가져간다는 말, 정말 맞을까요? 2021년 개봉한 범죄 누아르 「강릉」을 다 보고 나서 저는 이 질문을 오래 붙들고 있었습니다. 리조트 지분을 둘러싸고 배신과 살인이 반복되는 이 영화는, 결국 모든 걸 차지한 사람도 텅 빈 얼굴로 끝을 맞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해관계가 얽힌 순간 사람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저도 직접 경험해본 적이 있기에, 이 영화의 묵직한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욕망이 관계를 어떻게 무너뜨리는가
「강릉」의 핵심 갈등 구조는 단순합니다. 강릉 최대 조직의 일원 김길석은 평화로운 삶을 원하고, 채권 추심업자 출신의 이민석은 리조트 지분을 빼앗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정작 무서운 건 이민석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길석이 믿었던 선배 최무상이 뒤에서 칼을 꽂고, 신뢰 관계라고 여겼던 신사장도 끝내 배신을 선택합니다.
범죄 누아르(Crime Noir) 장르의 특성상, 이 영화는 선악 구도를 단순하게 그리지 않습니다. 범죄 누아르란 도덕적으로 모호한 인물들이 등장해 탐욕과 배신, 운명적 비극을 중심으로 서사를 끌어가는 장르를 말합니다. 여기서 길석은 악당도, 영웅도 아닙니다. 그저 자기 구역을 지키고 싶었던 사람일 뿐인데, 리조트라는 거대한 이권 앞에서 주변의 모든 관계가 재편됩니다.
저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처음에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사람이 돈 문제가 생기자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걸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의리 있고 믿을 만하다고 여겼던 사람이, 이해관계가 걸리는 순간 태도가 달라지는 건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배신의 연쇄, 살아남는 자는 누구인가
이 영화에서 배신의 구조는 단순한 이항 대립이 아닙니다. 이민석이 오회장을 살해하고, 최무상이 충섭을 제거하고, 신사장이 길석을 뒤에서 노리는 방식으로 배신은 중첩됩니다. 서사적으로는 이것이 긴장감을 유지하는 장치이지만, 심리학적으로 보면 상당히 정교하게 설계된 구조입니다.
사회적 교환 이론(Social Exchange Theor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사회적 교환 이론이란 인간이 관계를 유지할 때 비용과 보상을 암묵적으로 계산하며 행동한다는 이론으로, 보상보다 비용이 커진다고 판단하는 순간 관계를 끊거나 배신을 선택하게 된다는 설명을 제공합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영화 속 인물들의 선택은 이 이론의 극단적인 사례들입니다. 최무상은 의리보다 리조트가 더 크다고 판단했고, 신사장은 협력보다 독식이 더 유리하다고 계산했습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들을 보면서 느낀 건, 이런 계산이 사실 일상에서도 항상 작동한다는 불편한 사실이었습니다. 영화적 과장이 아니라, 규모만 다를 뿐 같은 메커니즘입니다. 영화 속 인물들의 이해관계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김길석 — 조직의 평화와 리조트 관리권 유지를 원함
- 이민석 — 채권 추심 출신으로 리조트 지분 100% 독점을 목표로 함
- 최무상 — 리조트를 개인적으로 욕심내며 충섭을 제거하고 길석을 배신
- 신사장 —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척하다 길석마저 처리하려 함
- 남궁은선 — 빚에 묶여 이민석의 구조 안에서 살아가다 결국 위증을 선택
신뢰 없는 승리가 남기는 것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길석은 민석을 처리하는 데 성공합니다. 리조트 지분 싸움의 결말로만 보면 길석이 이긴 셈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장면이 전혀 통쾌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보통 범죄 영화의 결말에서 주인공이 최후의 적을 제거하면 카타르시스가 따라오는데,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그것을 거부합니다.
길석 주변에는 이미 오회장도, 충섭도, 무상도 없습니다. 신뢰할 수 있다고 여겼던 관계는 대부분 사라졌거나 배신으로 끝났습니다. 이 상태에서 리조트 최대 주주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영화는 대사로 설명하지 않고 그 쓸쓸한 표정 하나로 전달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파이러스의 승리(Pyrrhic Victory)'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파이러스의 승리란 목표를 달성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치른 대가가 너무 커서 실질적으로는 패배나 다름없는 결과를 뜻합니다. 길석의 엔딩이 정확히 그렇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것도 마지막 그 텅 빈 얼굴이었습니다. 대사 한 마디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연구자들이 범죄 누아르의 결말 패턴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이 장르의 약 70% 이상이 주인공의 도덕적 손상이나 비극적 결말로 귀결됩니다(출처: British Film Institute). 「강릉」은 그 전통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감정 과잉 없이 건조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제 기준으로는 잘 만든 편에 속합니다.
유오성의 연기와 영화의 한계
이 영화에서 유오성의 연기는 확실히 영화를 붙들어두는 축입니다. 말수가 적고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인데, 그 절제가 오히려 무게감을 만들어냅니다. 대사보다 눈빛과 침묵으로 더 많은 것을 전달하는 연기 방식을 배우론에서는 '서브텍스트 연기(Subtext Acting)'라고 부릅니다. 서브텍스트 연기란 대사의 표면적 의미 아래에 숨겨진 감정과 의도를 행동과 태도로 표현하는 기법으로, 관객이 능동적으로 캐릭터의 내면을 읽도록 유도합니다. 제 경험상 이 방식이 제대로 작동할 때, 영화가 끝나고도 장면이 오래 머물게 됩니다.
다만 이 영화가 완벽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등장인물이 많고, 각자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초반 30분은 인물 관계를 파악하는 데 상당한 집중이 필요합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것도 그 부분이었는데, 오회장·신사장·남궁은선·최무상이 거의 동시에 등장하면서 관계의 맥락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편집이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스펙터클보다 인물의 선택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총격전이나 추격전보다 짧은 대화 한 마디에서 긴장감이 터져 나오는 방식은, 한국 범죄 영화 중에서도 꽤 절제된 연출에 속합니다. 장르의 쾌감을 원했다면 다소 밋밋할 수 있지만, 인간관계와 욕망을 묵직하게 들여다보고 싶은 분에게는 충분히 권할 만한 작품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강릉」은 실화 기반인가요?
A. 공식적으로는 실화 기반이라고 밝히지 않은 순수 창작 범죄 누아르입니다. 다만 강릉을 배경으로 지역 조직 문화와 리조트 개발 이권을 소재로 삼아 현실감 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정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는 제작진의 언급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Q. 영화 「강릉」에서 남궁은선은 왜 위증을 했나요?
A. 남궁은선은 이민석에게 빚을 지고 몸으로 빚을 갚는 처지였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이민석을 감싸는 거짓 진술을 한 건, 자신의 빚 문제와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영화는 이 관계를 착취 구조로 명확하게 그립니다.
Q. 최무상이 충섭을 배신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최무상은 리조트를 자신의 것으로 갖고 싶다는 욕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길석이 리조트를 맡게 되자 조직 서열 구조 안에서 자신의 몫이 사라진다고 판단했고, 결국 이민석의 계획과 암묵적으로 맞닿아 충섭을 제거하는 선택을 합니다. 욕심이 오래된 관계를 무너뜨리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Q. 「강릉」 같은 한국 누아르 영화를 더 추천해준다면?
A. 「부산행」보다는 「범죄도시」 시리즈나 「신세계」 계열의 조직 범죄 누아르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비슷한 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인물 관계와 배신 구조 중심의 서사를 선호한다면 「악인전」도 함께 보시면 비교가 됩니다.
결론
「강릉」은 승자가 되기 위해 모든 걸 걸었던 사람들이 결국 빈손으로 끝나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제가 떠올린 건, 결국 남는 건 관계라는 너무도 단순한 사실이었습니다. 욕심 앞에서 신뢰를 포기하는 선택은 단기적으로는 이득처럼 보이지만, 마지막에 남는 건 지분이 아니라 고립입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감정과 친분만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생각도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동시에, 그렇다고 모든 관계를 이해타산으로만 보는 것도 결국 길석의 결말을 닮아가는 길일 수 있습니다. 이 영화가 주는 균형감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범죄 누아르를 좋아하거나 인간관계의 본질을 다룬 묵직한 영화를 찾는다면 한 번쯤 볼 가치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