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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를 화장품 공병에 담아 학교에 가져가는 열여덟 살 소녀로 시작해서, 누룩이 사라진 뒤 무너져 내리는 한 사람의 이야기로 끝나는 영화가 있습니다. 장동윤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 <누룩>인데요. 처음 보기 시작할 때는 솔직히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달라질 작품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 낙차가 꽤 강렬하게 남아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귀엽게 시작해서 등골이 서늘해지는 분위기 반전

영화 초반은 솔직히 말하면 웃음이 나옵니다. 다 쓴 화장품 공병에 막걸리를 담아 책가방에 넣고 등교하는 다슬의 모습이 너무 당당해서요. 학교 화장실에서 몰래 홀짝이다가 친구한테 들키는 장면도 어딘가 코믹하게 느껴졌고, 양조장 아버지 밑에서 어릴 때부터 누룩을 만지며 자란 아이라는 설정도 '그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걸리의 맛이 달라지면서부터 영화의 온도가 완전히 바뀝니다. 여기서 누룩이란 술을 발효시키는 데 쓰이는 발효제로, 효모와 곰팡이균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특유의 향미를 만들어냅니다. 쉽게 말해 막걸리의 맛과 성질을 결정짓는 핵심 재료입니다. 그 누룩이 사라졌을 때 다슬이 보이는 반응은, 단순히 재료 하나를 잃어버린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는 내내 가장 불편했던 장면은 다슬이 학교에서 쓰러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전까지 평범한 성장영화라고 생각하며 편하게 보고 있었는데, 그 장면 이후로는 등받이에서 몸이 저절로 앞으로 당겨지더군요. 그날을 기점으로 다슬의 삶 전체가 송두리째 바뀐다는 내레이션이 나오는데, 그 말이 영화 전반부의 유쾌함을 순식간에 거두어 갔습니다.

요약: 초반의 유쾌한 분위기가 누룩 실종을 기점으로 급격히 전환되며, 그 낙차 자체가 영화의 가장 강한 서사적 장치입니다.

 

누룩 미스터리를 따라가며 던지는 질문들

영화 중반부터 저는 계속 한 가지 생각을 반복했습니다. '이 누룩에 정말 뭔가 있는 걸까, 아니면 다슬이 믿고 싶어서 만들어낸 걸까?' 영화는 그 답을 관객에게 쉽게 내어주지 않습니다.

다슬은 누룩을 잃어버린 뒤 입국(入麴)으로 바꿔치기 됐다고 주장합니다. 입국이란 공장에서 인위적으로 배양한 균을 곡물에 뿌려 만드는 발효제로, 전통 방식으로 자연 발효시킨 누룩과는 제조 방식과 균의 다양성 면에서 차이가 납니다. 국내 주류 제조 환경에서는 균일한 품질 관리를 위해 입국 사용이 일반화돼 있는데, 그것이 오히려 전통 누룩과의 차이를 더욱 또렷하게 만든다는 시각도 있습니다(출처: 국립식품과학원).

다슬을 취재하러 온 기자만이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들어줍니다. 가족은 걱정 때문에 현실적인 치료를 이야기하고, 오빠는 그녀를 말리려 합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누가 옳은지를 따지기 전에 '들어주는 행위 자체'가 다슬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는 겁니다. 기자의 존재는 미스터리 해결의 도구가 아니라 다슬의 감각을 존중해주는 유일한 외부인으로 기능합니다.

영화는 전통 발효(傳統醱酵) 문화와 관련된 상징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전통 발효란 자연계의 미생물이 자연스럽게 관여하는 발효 방식을 말하며, 동일한 조건에서도 계절과 환경에 따라 맛이 달라집니다. 다슬이 "겨울에 만들어서 봄에 마시는 막걸리가 맛있다"고 했던 대사는 바로 이 전통 발효의 계절성을 본능적으로 체득한 아이가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제 경험상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무언가에 진심인 사람의 말은 설명이 없어도 설득력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 누룩: 자연 발효 방식으로 만든 전통 발효제. 다양한 미생물이 복합 작용하여 막걸리 고유의 풍미를 결정
  • 입국: 공장에서 단일 균주를 인위적으로 배양한 발효제. 균일성은 높지만 전통 누룩과 맛의 결이 다름
  • 전통 발효: 계절과 환경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는 자연 중심의 발효 방식. 다슬이 집착하는 누룩의 본질
요약: 영화는 입국과 전통 누룩의 차이를 통해 '무엇이 진짜인가'라는 질문을 미스터리 서사에 녹여냅니다.

 

성장영화인가, 아니면 그 이상인가

영화 <누룩>은 표면상으로는 한 소녀의 성장담처럼 포장돼 있습니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이 영화가 묻고 있는 건 성장보다 훨씬 무거운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상과 비정상을 누가 결정하는가',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고통을 어디까지 들어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뒤에 남습니다.

장동윤 감독은 팬데믹 시기 '만약 막걸리가 병을 치료한다면 어떨까'라는 발상에서 출발했다고 밝혔습니다. 가벼운 전제가 점점 휴머니즘(humanism)으로 확장되는 구조인데요. 휴머니즘이란 인간의 존엄과 감정을 중심에 두는 사상으로, 이 영화에서는 타인의 말을 믿어주는 행위 자체를 인간다움의 기준으로 삼는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누룩을 둘러싼 미스터리가 명확하게 해소될 거라고 기대했는데, 영화는 그보다 오빠와 아버지, 그리고 다슬 사이의 감정선에 더 공을 들입니다. 오빠가 빈 바구니를 들고 방으로 향하는 장면이나, 아버지가 "막걸리는 약"이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장면들이 미스터리 해결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도 그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국 전통주 산업에서 누룩의 복원과 전통 발효 기술의 계승은 실제로도 중요한 문화적 과제로 다뤄지고 있습니다(출처: 국가유산청). 그 맥락에서 보면 <누룩>은 단순히 한 소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잊어가고 있는 무언가에 대한 은유로도 읽힙니다. 제 경우엔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그 층위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요약: 겉으로는 성장영화지만 속으로는 휴머니즘과 전통 발효 문화에 대한 은유가 겹쳐 있어, 보고 난 뒤 생각이 길어지는 작품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누룩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건가요?

A. 실화는 아닙니다. 장동윤 감독이 팬데믹 시기에 '만약 막걸리가 병을 치료한다면'이라는 가상의 전제에서 출발해 만든 창작 이야기입니다. 다만 전통 누룩과 입국의 차이, 소규모 양조장 환경 등 배경 설정은 실제 한국 전통주 문화를 꽤 사실적으로 반영하고 있어서 보는 내내 낯설지 않았습니다.

 

Q. 후반부가 어렵다는 말이 있던데, 미스터리 결말은 명확하게 나오나요?

A. 제가 직접 보면서도 그 부분이 가장 고민이었습니다. 영화는 누룩의 비밀을 단정적으로 해소해주지 않고, 오히려 철학적 여운을 남기는 방향을 택합니다. 미스터리가 깔끔하게 정리되는 결말을 기대하고 보신다면 다소 허탈할 수 있고, 감정선과 상징에 집중하면 오히려 더 많은 것이 보이는 구조입니다.

 

Q. 장동윤 감독의 첫 장편이라는데, 연출 완성도는 어떤가요?

A. 배우 출신 감독답게 배우들의 감정을 끌어내는 장면들은 섬세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다슬과 아버지의 양조장 대화, 오빠와 다슬의 충돌 장면이 특히 그랬습니다. 다만 상징과 은유가 중반 이후 집중적으로 쌓이면서 서사의 밀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점은 첫 장편의 흔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Q. 미성년자가 술을 마시는 장면이 많은데 불편하지 않나요?

A. 영화 안에서도 그 부분은 불편한 시선으로 다뤄집니다. 오빠는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주변 어른들도 곱지 않게 봅니다. 영화가 이를 미화하기보다는 그 시선 자체를 서사의 일부로 삼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음주를 낭만화하는 작품으로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결론

영화 <누룩>은 보는 내내 편하지 않은 작품이었습니다. 귀여운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누군가의 말을 끝까지 믿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드문 일인지를 묻는 영화로 끝났습니다. 제 경험상 보고 나서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영화가 좋은 영화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 작품은 분명 그쪽에 속합니다.

누룩의 비밀이 무엇인지, 다슬이 결국 건강을 되찾는지 명확한 답을 원하는 분께는 답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불명확함 안에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전통 발효라는 소재가 단지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의 뼈대로 기능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고, 장동윤 감독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비슷한 분위기의 한국 미스터리 휴머니즘 영화에 관심 있으신 분들께 권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yLarauMgl9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