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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끼>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출신 코치가 선수들에게 상습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실제와 닮은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어디서 끊어야 할지 몰라 화면을 계속 붙잡고 있었습니다. 보는 내내 불편하고 무거웠지만, 그 불편함이 결국 이 영화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였습니다.

피해자가 침묵할 수밖에 없는 구조, 영화가 보여준 현실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으신가요. 피해자가 용기를 냈는데도 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걸까, 라고요. 영화 <미끼>는 바로 그 물음을 정면으로 파고드는 작품입니다.
영화의 주인공 주영은 전직 쇼트트랙 국가대표로, 현재는 학교에서 컬링부 코치로 일하고 있습니다. 과거 코치 차혁수에게 상습적인 폭행과 성폭행을 당했던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초반부터 강렬한 인트로로 시작해, 그녀가 과거에 한 번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했다는 사실을 꺼냅니다. 그 사실 하나가 이후 모든 서사의 무게를 결정합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눈을 떼지 못했던 장면은, 주영이 어렵게 모은 증거를 기자에게 건넸더니 그 기자가 협회 측 인물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본 일은 아니지만, 불합리한 상황에서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는 감각은 누구나 한 번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영화는 그 감각을 아주 정확하게 짚어냅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2차 피해(secondary victimization)입니다. 2차 피해란 성폭력이나 폭행 피해를 입은 사람이 신고나 공론화 과정에서 주변 사람, 기관, 미디어 등에 의해 또다시 상처를 입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피해를 입고 목소리를 냈더니 오히려 가해자 취급을 받는 상황입니다. 영화 속 주영은 스토킹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협회는 즉각 무고죄로 맞고소하며 여론을 자기 편으로 끌어옵니다. 이 구조는 현실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되어 왔습니다.
출처: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자의 상당수가 신고 이후 2차 피해를 경험한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침묵을 선택하는 이유가 단순히 용기 부족이 아니라, 신고했을 때 감당해야 할 구조적 불이익 때문이라는 점을 이 수치는 잘 말해줍니다.
영화는 또한 조직적 은폐(institutional cover-up)라는 문제도 다룹니다. 조직적 은폐란 가해자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조직이나 기관이 자신의 이미지와 이해관계를 위해 사건을 묻으려 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협회 부회장이 "절차대로 징계를 내렸다"고 말하면서 정작 차혁수를 다시 여자 팀 코치로 복귀시키는 장면은, 이 은폐가 얼마나 일상적이고 교묘하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대놓고 악한 인물보다 "절차를 따랐다"고 말하는 인물이 더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 가해자 차혁수: 전직 국가대표 코치, 상습 폭행 및 성폭행 혐의
- 협회: 징계 후 재복귀를 허용하며 사건 은폐에 가담
- 장 기자: 피해자를 돕는 척하다 협회에 증거를 넘긴 배신자
- 주영: 두 번의 공론화 시도 끝에 법적 결과를 이끌어낸 피해자이자 생존자
공론화는 왜 이렇게 힘든가, 그리고 그럼에도 왜 해야 하는가
주영이 기자회견장에 서는 장면에서 저는 묘한 질문 하나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굳이 또 말해야 하는 고통이, 피해자의 몫이어야 하는 건가,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영화 속 공론화(whistleblowing) 과정은 결코 직선적으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공론화란 조직이나 권력이 숨기려는 사실을 대중에게 드러내는 행위로, 흔히 '내부 고발'이라고도 불립니다. 주영은 총 두 번의 공론화를 시도합니다. 첫 번째는 기자에게 증거를 넘기는 방식이었지만, 그 기자가 협회 편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증거는 사라지고 주영은 오히려 스토커로 몰립니다. 두 번째는 제자 수지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결심으로 직접 기자회견에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흔히 공론화를 말할 때, "용기를 내면 세상이 바뀐다"는 식의 말이 너무 쉽게 나옵니다. 저도 과거에 주변의 부당한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했던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 저를 막았던 건 용기 부족이라기보다는 나섰다가 나만 피해를 볼 것 같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영화는 그 두려움이 결코 근거 없는 것이 아님을 주영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줍니다.
그런데 영화가 묻는 건 "공론화를 해야 하느냐"가 아닙니다. "왜 피해자만 이 짐을 져야 하느냐"입니다. 유라의 오빠 무혁은 웹툰을 올리고, 주영은 증거를 모으고, 두 사람 모두 법적 위협을 감수합니다. 반면 협회와 코치는 언론 플레이와 고소 카드로 여론을 뒤집으려 합니다. 이 불균형이 영화에서 가장 화가 나는 지점이었습니다.
출처: 대한체육회는 스포츠 인권 침해 신고 및 지원 체계를 운영하고 있으며, 스포츠 윤리센터를 통해 피해자 지원과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보여주듯, 제도가 존재한다고 해서 피해자가 안전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건 아닙니다.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채우는 것이 결국 남은 과제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옥상에 선 주영은 무혁의 말에 설득되어 내려옵니다. 그 장면을 저는 두 가지로 읽었습니다. 하나는 너무 지쳐서 모든 걸 내려놓으려는 사람의 마지막 순간이고, 다른 하나는 그 순간에도 누군가의 목소리가 닿을 수 있다는 희망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석할지는 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제 경험상 그 장면은 주영이 과거를 내려놓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선택으로 읽혔습니다. 죽음이 아닌, 살아가는 방향으로의 선택이요.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미끼 결말은 해피엔딩인가요, 새드엔딩인가요?
A.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결말입니다. 차혁수와 협회는 결국 법적 심판을 받게 되지만, 주영은 이미 동료 유라와 제자 수지를 잃은 뒤입니다. 제가 직접 보고 느낀 바로는, 이 결말은 "이겼다"기보다 "그래도 살아남았다"에 가깝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희망으로도, 씁쓸함으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Q. 영화 미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건가요?
A. 영화는 특정 실제 사건을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 스포츠계에서 반복적으로 불거진 코치에 의한 선수 폭행·성폭행 사건들과 구조적으로 매우 닮아 있습니다. 그 때문에 보는 내내 현실의 어느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Q. 피해자가 신고했을 때 2차 피해를 막을 방법은 없나요?
A. 완벽한 방법은 없지만, 신뢰할 수 있는 지원 기관을 먼저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포츠 분야라면 스포츠 윤리센터, 일반적인 성폭력 피해라면 성폭력상담소나 여성긴급전화(1366)를 통해 법적·심리적 지원을 먼저 받고 나서 공론화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Q. 영화가 너무 무겁고 힘들 것 같은데 그래도 봐야 할까요?
A. 솔직히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비극적인 사건이 연이어 나오고 분위기도 내내 무겁습니다. 그런데 제가 봤을 때,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해서는 안 될 이야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보되, 보고 나서 감정이 많이 남는다면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습니다.
결론
영화 <미끼>를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붙잡고 있던 질문은 하나였습니다. 왜 매번 가장 많은 것을 잃는 건 피해자인가,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차혁수는 선수로서의 경력을 지키려 했고, 협회는 이미지를 지키려 했고, 기자는 자신의 관계를 지키려 했습니다. 그 안에서 주영은 동료를 잃고, 제자를 잃고, 증거까지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선 것은 순전히 그녀 개인의 용기이기도 하지만, 그 용기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피해자의 용기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 용기가 배신당하지 않을 환경을 사회가 먼저 만들어야 합니다. 이 영화를 보고 그 생각이 더 또렷해졌습니다. 무거운 주제라 선뜻 손이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 번쯤 직접 보시고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해 보시길 권합니다.
영화 <미끼>를 보면서 가장 안타깝게 느껴진 것은 피해자가 어렵게 용기를 내도 오히려 더 큰 상처와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었습니다. 특히 개인의 잘못을 넘어 조직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건을 숨기고 피해자의 목소리를 막는 모습에서 큰 답답함과 분노를 느꼈습니다. 피해자에게 계속 용기를 요구하기보다 안심하고 진실을 말할 수 있고, 그 용기가 배신당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가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