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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짜리 천재 아이의 IQ가 시스템으로 검증 가능한 최대치인 200을 넘는다는 설정, 처음엔 그냥 극적 과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그 수치가 단순한 캐릭터 장치가 아니라 작품 전체의 문제의식을 압축한 숫자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능력이 뛰어날수록 한 인간으로 존중받기는커녕 연구 대상이 되고, 투자 회수의 수단이 되는 구조. 〈유괴의 날〉을 다 보고 나서 한참 찜찜한 기분이 남았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다가 틀린 경험
일반적으로 유괴범은 아이를 해치는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드라마를 처음 시작할 때 저도 그 전제를 그대로 가져갔습니다. 김명준이 딸의 병원비 때문에 절박한 상황이라는 건 이해했지만, 그래도 어린아이를 유괴한다는 선택 자체에 선뜻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달랐습니다. 이야기가 쌓일수록 명준은 아이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위험한 상황에서 로이를 먼저 챙기고, 끝내 스스로 자수를 선택하는 인물로 변해갔습니다. 반면 사회적으로 성공한 의사, 투자자, 변호사들은 로이의 뇌를 연구 자산으로만 바라봤습니다. 이 대비가 생각보다 훨씬 날카로웠습니다.
저도 일상에서 누군가의 행동 하나만 보고 그 사람 전체를 판단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나중에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알고 나면 처음 생각과 완전히 달랐던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잘못된 행동에 사정이 있다고 해서 그 행동이 정당화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유괴의 날〉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렇게 묻습니다. 누가 아이를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명준과 로이가 서로를 의심하다가 점차 믿게 되는 과정도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혈연도 아니고, 유괴범과 피해 아이라는 관계인데 오히려 그 사이에서 제가 드라마 안에서 가장 진짜 같은 유대감을 느꼈습니다. 로이가 명준에게 "아빠"라고 부르는 장면은 억지스럽지 않았습니다. 그 전까지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대했는지를 충분히 쌓아 올렸기 때문입니다.
- 김명준: 유괴라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로이를 보호하고 자수를 선택한 인물
- 최로이: IQ 200 이상의 천재아이지만 연구와 투자의 대상으로 취급된 피해자
- 투자자·의사 집단: 겉으로는 합법적이지만 아이의 존엄성을 철저히 도구화한 집단
생명윤리와 아동 실험, 드라마가 건드린 진짜 질문
〈유괴의 날〉에서 최진태 원장이 로이에게 행한 실험의 핵심은 유전자 조작 바이러스 약물을 이용해 해마(hippocampus)의 개체수를 인위적으로 늘리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해마란 뇌에서 기억을 저장하고 관리하는 핵심 구조물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기억 장치의 용량 자체를 강제로 확장하려 했다는 뜻입니다.
이 설정이 단순한 SF적 상상이 아닌 이유는 실제로 인간의 인지 능력을 향상시키려는 뇌 자극 연구(Brain Enhancement Research)가 전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뇌 자극 연구란 전기 자극이나 약물, 유전자 편집 기술 등을 통해 인간의 학습 능력이나 기억력을 높이려는 시도를 총칭합니다. 출처: WHO — Human Genome Editing
문제는 이런 연구가 언제나 윤리적 경계선을 동반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동의 능력이 없는 아동을 대상으로 할 경우, 이는 아동 임상윤리(Pediatric Research Ethics) 위반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아동 임상윤리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의학 연구에서 충분한 설명과 동의, 최소한의 위험 원칙 등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료 윤리 체계입니다. 드라마 속 로이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의 실험 대상이었고, 자신이 실험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들을 보면서 느꼈던 건, 분노보다는 불편함에 가까운 감정이었습니다. 최진태 원장이 괴물처럼 묘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연구에 미쳐 있는 사람이었고, 딸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진심으로 믿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믿음이 오히려 더 섬뜩했습니다.
〈유괴의 날〉이 이 부분에서 잘한 점은, 생명윤리 문제를 설교 식으로 풀지 않았다는 겁니다. 로이의 입을 통해 "내 몸에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른 채 살았다"는 말이 나올 때, 그게 얼마나 폭력적인 현실인지를 시청자가 스스로 느끼도록 설계했습니다. 출처: UNICEF — 유엔 아동권리협약
다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투자자와 연구 집단의 음모가 너무 많이 겹치면서, 초반에 쌓아 올린 명준과 로이의 인간적인 관계가 상대적으로 묻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미스터리를 계속 추가하다 보니 감정의 결이 조금씩 희미해졌다는 게 개인적인 아쉬움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유괴의 날은 어느 플랫폼에서 볼 수 있나요?
A. 〈유괴의 날〉은 국내 OTT 및 유튜브 공개 채널을 통해 공개된 작품입니다. 일반적으로 특정 플랫폼 독점으로 알려진 경우가 많지만, 제 경험상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도 일부 또는 전편을 무료로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있으니 직접 검색해 보시는 게 정확합니다.
Q. 최로이가 천재라는 설정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요?
A. 드라마에서 로이의 IQ는 시스템으로 측정 가능한 최대치인 200 이상으로 묘사됩니다. 실제로 멘사(MENSA) 기준 IQ 148 이상이 상위 2% 수준이고, 200 이상은 사실상 표준 검사로는 수치화하기 어렵습니다. 드라마는 이 수치를 사실적 묘사보다는 아이가 연구 투자 대상이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장치로 사용했다고 보는 시각이 자연스럽습니다.
Q. 서혜은이 진짜 살인범이라는 게 너무 뜬금없지 않나요?
A. 처음 봤을 때 저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서혜은이 어린 시절 입양됐다가 파양당하고, HIV 감염까지 떠안으며 살아온 배경이 동기로서 충분히 쌓여 있었습니다. 다만 그 배경이 중반까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아 반전이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건 연출의 아쉬움이라고 생각합니다.
Q. 명준이 유죄인데 왜 로이가 재판에서 명준을 감쌌나요?
A. 로이는 재판에서 자신이 태어난 순간부터 5월 21일까지가 진짜 유괴당한 시간이었고, 명준과 함께한 시간이 오히려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었다고 말합니다. 이건 법적 판단이 아니라 로이 본인이 경험한 현실을 표현한 진술입니다. 드라마가 선악을 단순하게 나누지 않겠다는 의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제 경험상 느꼈습니다.
결론
〈유괴의 날〉은 범죄 스릴러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능력을 자산으로 환산하는 사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제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건 화려한 반전이 아니라, 명준이 로이에게 꽃을 사주면서 "마음으로 느껴봐"라고 말하는 조용한 장면이었습니다. 유괴범과 유괴된 아이 사이에서 그런 순간이 만들어진다는 게, 드라마 전체의 주제를 가장 잘 담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후반부의 과부하는 아쉽지만, 선과 악을 단순하게 구분하지 않고 누가 아이를 진짜로 인간 취급했는가를 일관되게 물어간 점에서 완성도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합니다. 비슷한 주제의 작품을 찾는다면 인간의 존엄성과 가족의 의미를 다룬 드라마들과 함께 묶어서 보면 더 깊이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