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단순한 부부 멜로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기억을 잃은 아내, 곁에서 돌봐주는 남편이라는 설정이 워낙 익숙해서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중반을 넘어서면서 제가 완전히 잘못 읽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영화 는 기억상실을 단순한 장치로 쓰지 않고, 그 빈자리를 미스터리의 핵심으로 삼습니다. 추자현과 이무생의 연기가 그 구조를 조용히 떠받치고 있었고요. 기억상실이라는 장치가 이렇게 쓰일 줄 몰랐습니다영화에서 더키(추자현)는 교통사고 이후 역행성 기억상실(retrograde amnesia)을 겪습니다. 역행성 기억상실이란 사고 이전의 기억이 지워지는 증상으로, 단순히 "잊어버린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뇌의 해마와 편도체가 손상되거나 기능이 억제될 때 발생하며, 감정적으로 강..
막걸리를 화장품 공병에 담아 학교에 가져가는 열여덟 살 소녀로 시작해서, 누룩이 사라진 뒤 무너져 내리는 한 사람의 이야기로 끝나는 영화가 있습니다. 장동윤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 인데요. 처음 보기 시작할 때는 솔직히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달라질 작품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 낙차가 꽤 강렬하게 남아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귀엽게 시작해서 등골이 서늘해지는 분위기 반전영화 초반은 솔직히 말하면 웃음이 나옵니다. 다 쓴 화장품 공병에 막걸리를 담아 책가방에 넣고 등교하는 다슬의 모습이 너무 당당해서요. 학교 화장실에서 몰래 홀짝이다가 친구한테 들키는 장면도 어딘가 코믹하게 느껴졌고, 양조장 아버지 밑에서 어릴 때부터 누룩을 만지며 자란 아이라는 설정도 '그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그런데 막걸리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