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부장판사가 직접 극본을 쓴 법정 드라마가 있습니다. 2018년 방영된 JTBC 〈미스 함무라비〉는 법원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되, 승패보다 사람을 먼저 들여다보는 드라마입니다. 솔직히 처음엔 가볍게 틀었는데, 보면 볼수록 단순한 법정물이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정의감이 넘치는 신임 판사와 원칙주의 엘리트 판사가 부딪히면서 '옳다는 것'의 의미를 계속 다시 묻는 구조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공감과 원칙, 어느 쪽이 진짜 정의인가〈미스 함무라비〉의 핵심 갈등은 두 신임 판사의 충돌에서 출발합니다. 박차오름(고아라 분)은 피아노과 출신이라는 이색적인 이력을 가진 판사로, 법정에서 당사자의 감정과 사정에 깊이 공감합니다. 반면 임바른(김명수 분)은 사법연수원 수석 출신의 엘리트로, 증거와 법리 중심의 ..
솔직히 저는 《구경이》를 보기 전까지 "또 천재 범죄자 나오는 드라마겠지" 하고 반쯤 기대를 접었습니다. 그런데 첫 화에서 여고생이 냉장고 속 막걸리에 독을 넣는 장면을 보는 순간, 그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건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니었습니다. 범인을 처음부터 보여주고, 그 범인을 잡으러 가는 괴짜 전직 경찰의 두뇌 싸움을 따라가는 역추적극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범인을 보여주는 드라마의 배경제가 직접 1화를 틀어봤는데, 첫 장면부터 범인 이경이 수위 아저씨를 독살하려는 모습이 그대로 나옵니다. 보통의 추리물이라면 "누가 범인인가"를 숨기는 게 기본인데, 이 드라마는 그 공식을 정반대로 뒤집었습니다. 이런 구조를 장르 용어로 '역추리 서사(inverted detective story)..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의료드라마라고 하면 천재 외과의가 불가능한 수술을 해내는 장면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주인공 오이영은 이미 한 번 레지던트를 때려치운 사람이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온 이유가 5천만 원짜리 빚 때문입니다. 멋진 소명의식 같은 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불편한 시작이 오히려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게 만든 이유가 됐습니다. 일반적인 의료드라마와 실제로 달랐던 것들의료드라마는 보통 두 가지 공식을 따른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천재 의사가 모든 걸 해결하거나, 아니면 인턴이 어느 날 갑자기 기적 같은 판단을 내려 환자를 살리거나. 저도 처음엔 그 공식 중 하나를 예상하며 봤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달랐습니다.레지던트 1년 차(전..
